마약퇴치위젯


능동의 웃음이 인생을 바꾼다 EVENT+++

추억 속의 만화영화, 개구리 왕눈이의 주제가 가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난다는, 칠전팔기(七顚八起)의 사자성어를 옮긴 가사이다. 그런데 NOROO에는 칠전팔소(七顚八笑)를 실천하는 NOROO인이 있다.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웃으면서 일어나는 그는 김용목 NOROO 노조위원장이다.

즐거운 회사, 정겨운 동료



“왜 웃냐고요? 웃음은 전염입니다. 행복해야 웃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웃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거지요. 수동이 아닌 능동의 웃음만이 인생을 바꿉니다!” 김용목 위원장이 칠전팔소의 인생 원칙을 지키는 이유다. 이제는 100세까지 바라보는 긴 인생길에서 일곱 번, 아니 스무 번이라도 넘어질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때마다 다시 일어나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 그러나 이를 악물고 일어나느냐, 웃으며 일어나느냐는 큰 차이를 낳는다. “길에서 실수로 넘어졌을 때에도 험한 얼굴로 괜한 욕을 하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털웃음을 지으며 일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 옆에 있는 것이 기분 좋고, 손을 내밀어 주고 싶을까요?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김용목 위원장은 회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즐겁게 일하고 많이 웃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운 기운을 줄 수 있습니다. 뭐든 힘들게만 생각하면 남을 배려하는 마음 따위는 생길 수 없죠. 내가 즐거워야 회사가 즐겁고, 회사가 즐거워야 내가 즐겁다는 것, 이 둘에는 앞 뒤의 순서가 없습니다.” 노사 화합을 추구하는 노조위원장으로 활동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회사 생활을 즐겁게 하려면, 내 일에 대한 보상이 분명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내가 회사에 얼마만큼의 몫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회사의 성과에서 내 몫을 얼마나 받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죠. 이 과정에서 정보의 공개가 투명하지 않으면 소통이 어렵고, 소통이 어려우면 흔히 말하는 ‘투쟁’이라는 극단적 대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하지만 NOROO는 다릅니다. 정직과 신뢰의 토대가 노사 양측에 깔려 있기 때문에 저는 소통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결과 13년 연속 무교섭 임금 타결이라는 금자탑을 쌓아갈 수 있었죠.” 그도 처음에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노조가 움직이는 것 아니냐”고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비판에 머물렀다면 노조위원장으로 4선까지 이루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에게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경제 위기 때 동고동락하던 동료를 떠나 보내던 일이었다. 그리고 그만큼 가장 기뻤던 일이 회사가 정상화되면서 3년 만에 다시 복직한 동료를 만나 포옹한 것이었다. “원망이 많았을 조합원들이 ‘고맙다’라는 인사를 할 땐 정말 감격의 눈물이 났습니다. 그 약속을 지켜주신 그룹 회장님, 그리고 함께 노력한 NOROO 모든 식구들에게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있었기에 NOROO는 노사 간의 동반자 인식이 더욱 강해졌으며 그 속에서 NOROO 노조는 양자의 현실과 간격을 좁히는 조정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2009년도에는 생애설계형 고용안정제도인 임금피크제와 희망퇴직제를 개발했는데, 올해 3월말이면 만60세로 정년 퇴임하는 현장 직원이 처음 나오게 되는 것이 그의 요새 기쁨 중 하나다. “결국은 좋은 노사 문화가 즐거운 직장의 기본 조건일 것입니다. 다른 곳에서보다 직장에서의 신바람은 시너지 효과가 큽니다. 배려로 동료를 정답게 하고, 협조로 직장을 즐겁게 하니까요.”

 

 

 

신 노사문화의 전도사



 

“울지 말고 일어나, 피리를 불어라.” 개구리 왕눈이는 피리를 불지만 김용목 위원장은 만돌린을 꺼내어 든다. 띠리링~ 높고 경쾌한 선율에 절로 흥이 난다. 김용목 위원장이 연주하는 것은 만돌린뿐만이 아니다.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흔한 기념품이나 양주 대신 악기 시장에 가서 그 나라의 전통 악기를 샀다.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도 연주를 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곧잘 연주한다. “제가 만돌린 연주로 결혼식 축가를 300번 넘게 했을 겁니다. 제 스트레스도 날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도 주고, 얼마나 좋습니까? 껄껄껄.” 그가 악기에 도전하게 된 것은 노래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이었다. 노래 시험에서 실수를 한 것이 뇌리에 남아 악기를 하나하나 섭렵해 간 것이다. 정말이지, 울지 않고 일어나 악기를 배운 셈이다.

 

그 도전의 정신은 그의 인생 전체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어려운 형편 탓에 금오공고를 갔는데 장학혜택 대신에 군복무를 5년 동안 해야 했어요. 제대 후 회계학을 전공했지만 NOROO에서의 첫 업무는 재고 관리였지요. 힘든 현장 업무였지만 늦은 나이의 첫 직장이라 신나게 일했습니다. 그랬더니 물류관리사도 되고, 기획부서로 가게 되기도 하더군요.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서 일하며 재미있는 행사도 기획하고, 마케팅과 영업부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NOROO의 노조위원장이자 신 노사문화의 전도사로서 전국의 산업현장에서 노사 관계 특강을 실시하며 NOROO의 좋은 이미지를 널리 알리고 있다. 이 때문에 매스미디어에도 몇 번 등장하여 친구들과 친인척을 깜짝 놀라게 한 재미있는 일화도 생겼다. “제 인생의 즐거움의 원천이요? ‘성실수희(誠實수喜)’이지요. 성실하게 임하면 즐거움이 찾아 듭니다!” 어디 즐거움만 찾아올까. 인심이 드러나는 그의 함박웃음은 사람을 끌어당겨 놓으니.

 

 

 내 인생의 멘토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1809.2.12~1865.4.15

 

링컨은 그의 인생 기간 동안 27번의 실패를 경험했다고 합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차치하더라도 말이죠. 각종 선거에서 낙선을 거듭한 것은 물론, 사업에도 실패했고 생전에 두 아들을 잃기도 했습니다. 그 수많은 낙담과 슬픔을 꿋꿋이 견뎌내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재임기간 대부분을 전쟁터의 현장에서 부상병을 위로하며 “병사가 있는 곳에 링컨이 있다”는 말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철저한 포용의 리더십으로 미국을 하나로 만들었지요. “리더가 희망을 잃으면 조직에는 절망이 만연하다”며 늘 절망보다 희망을 먼저 보던 그의 말과 행동은 제 인생의 멘토입니다.

 

출처: http://blog.noroo.co.kr/505


P 여울가녘님의 파란블로그에서 발행된 글입니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